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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하루하루 기록하는 독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 - (6)

by 김바이오공 2020. 4. 23.

10장.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랑자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계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자신의 계급적 편견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을 뿐이다.

 

 부랑자들은 섞여들어가기가 쉬운 편이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악센트로 출신이 드러날까 걱정했지만 정작 부랑자가 되어보니 온갖 악센트가 섞여 있어 자신을 눈치채는 이가 몇 없었다. 그리고 남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으니 출신에 대해 말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방법도 간단했다. 그냥 가까운 부랑자 임시수용소로 가면 끝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노동계급은 말이 달랐다. 단번에 섞여들어갈 방법도 적었을 뿐더러, 전문직인 광부나 건설 인부가 되어 섞이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하숙인이 되는 법 밖에 없다. 하지만 조지 오웰과 노동계급은 진심으로 친해질 수 없었다. "그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이며, 정말 친해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큰 문제다".

 

 계급주의 타도를 외치는 이들은 계급을 희화화하고 상류층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계급이 진심으로 없어지기 바라는 이들은 드물다.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은밀한 확신에세 비롯"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예로 골즈워디의 작품 변천을 소개한다. 이전에 '진보적인' 글이라고 했을 만큼, 초반의 골즈워디는 압제자와 피압제자에 대한 책이 많다. 그러나 현실을 맞닥뜨린 후 그는 "경제적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노동 계급이 가축 무리처럼 식민지에 끌려가도 좋다는 주장을 한다". 조지 오웰은 그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좀 더 품위 있는 형태의 파시즘에 도달했으리라 말한다.

 

 조지 오웰은 계급 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관념은 '중산층'의 것일 수 밖에 없고,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취향, 명예에 대한 감각, 염치, 식사예절, 어투, 억양, 몸동작 마저도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계급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은밀한 속물근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취향과 편견도 억눌러야 한다. 계급 철폐는 자신의 습성과 '이데올로기'를 바꿔야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