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
8장. 학교에서 익힌 편견
조지 오웰은 이번 장에서 왜 노동 계급을 보려 했는지 이야기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계급'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상류 중산층 중 하급에 속했다. 영국의 계급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돈 말고도 계급 제도가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권 계층에 어울리게 행동하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수익을 보면 상류층처럼 살 수가 없었다. 하인들 팁 주는 법을 알아도 팁 줄 하인은 한 둘 뿐이고, 정장을 주문하는 법을 알아도 주문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부류는 인도로 가는 걸 꽤 좋게 생각했다. 그곳으로 가면 싼 값에 승마도 하고 사냥도 하고 하인도 부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계층은 진짜 상류층과 노동 계급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동 계급에 가깝다. '평민'에 대한 상류층의 해묵은 태도는 여기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조지 오웰은 생각한다. 이런 '태도'란, 상대를 조롱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따금 엄청난 증오를 퍼붓는 태도를 의미한다. 노동 계급인 것 자체를 조롱하면서도, 그들 중 누군가가 큰 돈을 벌면 순식간에 마귀로 몰아가며 증오한다.
'흑인 동네에 사는 딱한 백인 가정'이라는 비유에서 이해가 확실히 되었다. 현재의 미국의 백인 하층 계급과 비슷한 것 같은데, 자신감을 끌어올 부분이라고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신분 뿐일 때 더욱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매달리며 흑인을 무시하고 잘난 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흑인을 노동 계급으로, 백인을 몰락한 상류층으로 약간 비틀어 이해하면 쉽다.
조지 오웰도 어렸을 적 곧잘 어울리던 노동 계급과 적이 되었다. 어렸을 적 까닭도 모르고 그냥 반목했다. 노동 계급이 자신들을 미워하는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현실을 얼마 전까만해도 공공연히 쓰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라는 말이었다. 몸으로 느끼는 혐오감 만큼 근본적인 것은 없다. 노동 계급이 무식하고, 게으르고, 상스럽고... 이런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조지 오웰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해로운' 것은 바로 그들이 '더러운 존재'라고 믿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영화 "기생충"을 떠올렸다. 배우 이선균이 송강호 가족이 '똑같은 냄새가 난다',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언급했던 점 모두.
또 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있어 살짝 적어놓는다. '몽골 인종들 사이에는(내가 알기론 모든 아시아인들 사이에는) 선천적인 평등의식 같은게 있다. 사람끼리 쉽게 친밀해지는 경향 같은게 있는데, 서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윗 문단에는 "중국 병풍에 대하여"라는 책에 대해 나와있는데, 그 안에서 중국인 고관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며 5분 가량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놓고 정각 짐 나르는 머슴들과 함께 사이좋게 밥을 먹는 장면을 묘사한다.)
노동자가 본래 더러운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조지 오웰은 기차 3등칸에 탔던 이야기를 한다. 하층 계급의 사내들만 가득찬 기차 안에서 누군가가 맥주병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한 모금씩 마시고 옆 사람에게 돌렸고, 조지 오웰은 '그 많은 하층 계급 사내들의 입을 다 거쳐온' 맥주병에 자신도 입을 댈 일이 생길까봐 떨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병이 내밀어진다면 감히 거절할 수도 없었을거라며 '비위 약한 중산층의 소심함'이라 말한다.
조지 오웰은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의 신체를 역겹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이나 병에 든 무얼 마시는 건 싫다고 한다(다른 사람이란 남자를 말하는 것이고 여자가 입 댄건 상관없단다). 적어도 계급의식은 아니라고 한다.
9장. 제국 경찰에서 부랑자로
조지 오웰은 자신이 이튼 스쿨을 다닐 당시를 회상한다. 그 시절 전쟁에 대한 반감과 무능한 '노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한창 혁명적인 분위기가 주류였다고 한다. 사립학교였던 이튼에도 그런 분위기가 영향을 끼쳤고, 아이들은 국수적 애국 가요에 반항적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레닌을 위인으로 꼽는 등의 행동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여전히 노동계급을 동등하게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위에 반항적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 진보 성향의 글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노동계급의 악센트에 반발을 느꼈다. 이 이중적인 상태는 모두가 비슷했다.
조지 오웰이 인도에 갔을 때, 원주민인 버마 사람들에게는 그런 역겨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옷을 입고 벗기는 것과 같은 친밀한 접촉이 필요한 일을 서슴없이 맡길 수 있을 정도였다. 영국인 하인이었으면 불가능했을거라며 조지 오웰은 버마인 하인을 대하는 그의 느낌은 여성을 대하는 느낌과 비슷했다고 한다(나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아래는 조지 오웰이 몽골 인종과 백인을 비교해놓은 문단 전체다. 그의 시대나 지금이나 백인에 대한 이런식의 묘사가 논란이 없었을지 궁금하다.
몽골 인종 대부분이 백인보다 훨씬 나은 신체를 갖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버마인의 매끈한 피부를 생각해보라. 마흔이 넘도록 주름도 지지 않고 늙어도 마른 가죽처럼 시들해질 뿐이다. 그에 비해 백인의 피부는 거칠고 잘도 축 처진다. 백인은 다리 밑부분과 팔 뒷부분과 가슴에 길고 가늘고 못난 털이 잔뜩 난다. 그에 비해 버마인은 적당한 곳에 빳빳하고 검은 털이 짧게 뭉쳐 있을 뿐이며, 그 나머지는 털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수염도 대개 없는 편이다. 백인은 거의 대부분이 대머리가 되는 데 비해 버마인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버마인의 치아는 비틀즙 때문에 변색이 돼서 그렇지 완벽한 데 비해, 백인의 치아는 대부분 썩는다. 백인은 대개 몸매가 엉망이며, 아무데나 살이 쪄 불룩해진다. 그에 비해 몽골 인종은 골격이 미끈하며, 나이가 들어도 몸매가 젊을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백인은 극소수만 그것도 몇 년 동안만 아주 아름다울 뿐, 대부분은 아무리 머라 해도 동양인에 비해 미모가 크게 떨어진다.
작가는 마침내 직위를 내놓기로 다짐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낸다.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라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보니, 영국 본토에도 백인과 유색인종과 같은 관계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계층이었다. 조지 오웰은 노동 계급 또한 압제와 착취를 당하는 밑바닥임을 인지했고, 그들과 어울려보기로 결심한다. 압제에 대한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씻어내려 한 것인데, 이것이 '불합리한 생각'인줄은 당시에도 알았다고 한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입을 열자마자 악센트 때문에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리라 생각했다. 탐문을 대비했고, 숙소로 들어갈 때는 분명 시비가 걸릴거라 생각하며 싸움을 대비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사람들은 공손하고 친절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그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도 몇 달간 방랑생활을 한 그는 해방감과 모험심을 맛보았다.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다 싶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솔직하고 생생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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