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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음악/책 리뷰

<얼음나무 숲> - 하지은

by 김바이오공 2020. 9. 10.

 

언젠가 신을 만난다면 물으리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앗아 가신 거냐고

- <얼음나무 숲>  #13  환상곡, 얼음나무 숲

 

◈별점

총 별점: (5)

 

-세부 별점-

재미: (5)

가독성: ☆(4)

(맨 아래에 총평을 써두었습니다.)

 

<별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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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은 주관적이라는 점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별점 5점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부여하는 점수이며, 객관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판단되는 책에는 예외적으로 6점을 부여합니다. 총별점은 다음 요소들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읽는 이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쉽게 읽을 수 있는가? / 독자의 수준에 맞춘 책인가?예술의 본질을 갖추었는가?재미가 있는가? / 흥미를 끌 만한가?주제를 잘 풀었는가?

 

추가 요소↓

(6):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 지식적 측면이나 흥미의 측면에서 빠지지 않는 책.

☆(0): 읽는 도중에 중단하거나 포기한 책. 취향과 심각하게 맞지 않거나 내용을 견딜 수 없었던 경우.

페이지 수: 외전 포함 551p

출판사: 황금가지

지은이: 하지은

 


 

 <얼음나무 숲>은 초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소설이다. 여느 때처럼 방과후에 학교 도서관을 휘젓고 있었다. 책을 잘못 고르면 집에 가서 읽을게 없어졌기에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목차를 훑고, 추천사와 머리말, 때로는 옮긴이의 말까지 읽는 '테스트'를 거친 책만 집어 대출하곤 했다. 그런데 표지만으로 내 눈에 박힌 책이 있었다. 마른 회색빛의 바탕에 흰 나무들이 줄기줄기 뻗어 있는 서늘하고 허무한 모습에 이끌렸다. 표지만 보고 막 골랐던 터라 잠깐 후회했다. 내 '테스트'로 검증하지 않고 빌리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펼친 후에는 그런 생각이 말끔히 없어졌다. 오히려 앉은자리에서 두 번은 읽었다. 이후에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박혀 며칠을 떠올랐다. 그만큼 어린 시절에서 선명히 기억에 남은 몇 안 되는 소설이었다.

 

 리메이크 본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정보를 찾아봤다. 내가 읽었던 판본은 2008년에 인쇄되어 절판된지 오래였기에 중고가도 본 책을 뛰어넘었다. 때문에 감히 소장할 엄두는 못 내고 있었다. 파는 곳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재판을 한 거다. 그것도 외전 수록 본을!  리뷰 하나를 읽어봤고 가격도 괜찮았다. 살 생각을 가득 안고 알라딘에 들어갔더니, 새로운 표지가 턱 눈에 들어왔다. 본래의 쓸쓸한 느낌은 어디 가고 부드러운 파스텔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대로 뒤로 나가버렸다. 차라리 새 책을 살 돈으로 절판본을 다시 구해볼까, 싶다가도 외전이 아까워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연 도서관에서 <얼음나무 숲> 리메이크 본을 발견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나, 살 수밖에 없었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을 재미있게 적기란 힘들다. 내가 생각한 천재가 남들에게도 천재로 보여야 하고, 동시에 그들의 싸움이 수준 낮은 투닥임이 아니라 심리와 이유가 분명한 싸움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소위 먼치킨의 클리셰가 될 수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독자가 소외되거나, 누가 봐도 유치한 이유 때문에 싸우는 걸 보면 책장을 넘길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얼음나무 숲>은 훌륭했다. 음악적 천재성, 맹목적인 심리, 인물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잘 표현했다. 덕분에 이야기를 따라가고 공감할 수 있었다. 중후반으로 가면서 등장인물 수가 늘어나면 누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인물이 그때의 그 사람인지, 아니면 주인공과 어떤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는지 헷갈린다. 하지만 <얼음나무 숲>에서는 등장인물이 헷갈린 적이 없다. 대강 생각나는 주/조연만 해도 20명 남짓은 된다. 이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한 덕분이다.

 

 음악에 대한 묘사도 읽기 즐거웠다. 나도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이론을 배운 건 고등학교 음악 시간이 마지막이다. 주인공이 다루는 피아노는 그나마 익숙하기라도 하지만, 바이올린은 잡아본 적도 없고 자주 듣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묘사는 기교나 음악적 기호가 거의 없어 편하게 분위기와 감정으로 느낄 수 있다. 아르페지오니 테누토니 하는 음악 용어들과 거리를 둔지 오래였기에 이러한 묘사가 오히려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충분했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인물들이 멋진 연주를 진행 중이었으니까.

 

 동경, 질투, 순수, 열정, 맹목, 아름다움. 천재와 천재. 두 주인공 고요와 바옐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진 판타지 소설이다. 장르에 거부감이 없고 주인공의 심리가 자세히 묘사된 소설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미스터리적 요소도 있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짙게 남은 여운에 잠기는 것도 즐거운 소설이다.

 

+다행히 껍데기 안의 표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총평:

여운이 길게 남는 판타지 장편 소설. 인물들 간의 관계와 미스터리의 적절한 배합으로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 수록된 외전을 통해 또 다른 주인공인 바옐의 뒷이야기도 볼 수 있게 되었다.